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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재즈 피아니스트, 꿈이 짓밟히기까지. 타다카나 운노 씨의 사연


(사진: 사야카 우노가 뉴욕 타임스에 제공)


재즈 피아니스트 타다타카 운노(40)와 그의 아내 사야카는 지난달 말, 할렘의 웨스트 135번가 지하철에 내렸을 때 일련의 괴한들로부터 폭행을 당했습니다. 일련의 10대 젊은이들이 운노에게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타다타카 운노는 오른쪽 쇄골이 골절되고 팔을 다치고 온몸에 멍이 들었고 부러진 뼈를 수술한 뒤에 운노는 피아노를 다시 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오른손은 움직일 수도 없고 왼손으로 조금씩 건반을 누르는 걸 연습 중이라고 합니다.

8명의 괴한의 폭행 장면은 지하철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습니다. 괴한은 욕을 하며 “중국인,” “아시아인”이라는 단어를 연발했다고 합니다. (괴한이 어떤 인종인지는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다.)

타다타카 운노는 널리 알려진 재즈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뉴욕 타임스가 제목을 달았듯 ‘rising star’였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죠. 그는 2년 전 49세 사이로 사망한 로이 하그로브의 마지막 정규 피아니스트였으니까요.

타다타카 운노는 9살에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18살에 일본에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재즈를 연주하는데 왠지 모를 허무함을 느꼈고 뉴욕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스물 일곱이 됐을 때였습니다. 그가 뉴욕으로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울면서 가지말라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 뉴욕은 막연하고 위험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내 영웅들을 만나고 그들과 연주하고 이야기하고 어울리고 싶었어요. 내가 일본에 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는 2008년 6월 19일, 아내 사야카와 함께 낯선 미국, 뉴욕의 할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재즈의 역사가 일어났던 할렘에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직업도 없었지만, 그저 뉴욕에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운노는 뉴욕 재즈 신의 한가운데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정말 열심히 연주하고 연습하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상냥하고 우아한 연주자입니다. 모두가 그를 사랑합니다.”

Small 재즈 클럽과 Mezzrow 재즈 클럽의 운영자 스파이크 윌너 씨의 말입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코비드-19와 관련한 ‘중국 비난’ 발언 이후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늘었다고 분석했고, 열심히 살아온 재즈 연주자이자 이민자 타다타카 운노의 변고를 통해 이 부분을 다시 조명합니다.


가난할지언정 실력 하나로 대접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은 재즈 클럽입니다. 그곳은 자본의 논리가 적용하지 않습니다. 연주자는 just show me 원칙을 준수하면 됩니다. 그래서 먼 나라의 실력있는 연주자들이 재즈라는 새로운 어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올 수 있습니다.

그것도 재즈의 심장 뉴욕으로 말입니다.

타다타카 운노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다시 그가 어서 회복해서 피아노를 칠 수 있기 바랍니다.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양수연 (재즈 비평가)



(2017년 Roy Hargrove Quin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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